[FOCUS] 트럼프 멘토는 ‘악마 변호사’…1970년대부터 각별
지난 세기 미국 현대사에서 가장 잔혹하고 악랄하고 비인간적인 사람, 인간의 탈을 쓴 가장 악마에 가까운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1위가 로이 콘 변호사일 것이다. 그는 검사 출신의 변호사임에도 불구하고 각종 불법 수사와 협박, 사기, 선동 등 다양한 악행을 저지른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도널드 트럼프와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멘토로서 많은 조언을 해준 인물이기도 하다. 워싱턴 정가에선 현재의 트럼프가 만들어지기까지 로이 콘의 영향은 막대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로이 콘은 1927년 뉴욕에서 유대계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맨해튼 소재 컬럼비아대 로스쿨을 졸업한 후 2년 동안 뉴욕 남부 지방검사의 서기로 일했으며, 뉴욕주 변호사를 거쳐 연방 검사가 됐다. 2차 세계대전 후 동서 냉전이 시작되면서 그는 반공주의에 심취했다. ‘미국 공산주의 반대 유대인 연맹’이라는 단체에 가입해 활동했다. 검사 시절에는 소련 스파이 사건에 유독 집착했다. 당시 냉전 분위기로 인해 그는 승승장구했는데, 1953년에는 미국의 핵무기 기술을 소련에 넘긴 스파이 혐의로 로젠버그 부부를 기소해 사형을 받도록 했다. ▶에이즈로 59세 때 사망 로젠버그 부부 사건으로 명성을 떨친 로이 콘은 연방수사국(FBI) 수장인 에드가후버의 관심을 끌게 돼 그와도 친분을 맺게 됐다. 로이 콘은 비밀수사를 하면서 사건을 조작하고, 심지어 고문과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조셉 매카시 상원의원은 이런 로이 콘을 워싱턴으로 불러들여 자신의 고문으로 영입했고, 이로 인해 미국판 빨갱이 마녀사냥인 소위 ‘매카시 광풍’이 발생해 수많은 사람들이 누명을 쓰고 희생 당했다. 매카시가 상원의원직을 잃자 로이 콘은 뉴욕 변호사로 복귀했다. 뉴욕 상류층의 변호와 법률 자문을 맡았다. 당시 고객으로는 부동산업자인 도널드 트럼프, 그리스 선박왕으로 알려진 아리스토틀오나시스, 뉴욕 양키스 구단주인 조지 스타인브레너, 유명 예술가인 리처드 듀폰, 가톨릭 뉴욕 대교구 주교 등이 있었다. 로이 콘의 활동은 일반 변호사와는 달랐다. 그의 이름 뒤에는 위증, 절도, 업무 방해, 갈취, 탈세, 뇌물수수, 사기, 협박, 증인 매수 등 불명예스러운 용어들이 따라 붙였다. 로이 콘은 1980년 로널드 레이건의 대선 캠페인에서 핵심 역할을 했다. 이때 그는 레이건 전 대통령의 부인인 낸시와 친분을 갖게 된다. 나중에 밝혀진 것이지만 로이 콘은 동성애자였다. 그는 에이즈에 걸려 1986년 59세 때 생을 마감했다. 끝까지 에이즈 감염을 숨기고 간암이라고 우겼지만, 이를 눈치챈 낸시 여사가 에이즈 치료제를 보내주기도 했다고 한다. 이전까지 에이즈 감염에 무신경했던 백악관도 이를 계기로 관심이 커졌다. 로이 콘은 말년에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했다. 의뢰인의 유언장을 조작하는 파렴치한 행위 때문이다. 그는 주류회사를 소유한 억만장자인 루이스 로젠스티엘이 상속자로 자신을 지정하도록 한 것이 들통나 1986년 뉴욕주 법원에 의해 변호사 자격을 잃었다. 로젠스티엘이 병원에서 의식을 잃고 죽어갈 때 병실에서 강제로 그의 손가락을 움직여 사인하도록 한 것이다. 로이 콘은 마피아와도 깊은 관계를 맺었다. 1970년대 맨해튼의 돈과 마약을 지배하는 이탈리아계 마피아 패밀리를 변호했다. 영화 ‘대부’로 인해 많이 알려진 마피아 제노비스 패밀리의 두목인 빈센트 지간테와 그의 형인 마리오 지간테의 변호사였고, 감비오패밀리의 두목인 존 고티를 변호하기도 했다. 1972년 로이 콘은 자신의 휘하에 있던 정치 브로커 로저 스톤을 리처드 닉슨의 선거 캠프에 소개한다. 로저 스톤은 나중에 민주당 선거대책본부에 도청 장치를 설치한 워터게이트 사건의 행동대원으로 밝혀져 징역형을 받았다. 로저 스톤은 당시 충성의 표시로 등에 닉슨의 얼굴을 문신으로 새기기도 했다. 이런 로저 스톤을 트럼프에게 소개한 이도 로이 콘이다. 로이 콘은 1970년대 트럼프의 건설회사가 아파트에 입주하려는 흑인들을 차별했다는 이유로 고발된 사건을 맡은 후 트럼프와 로저 스톤을 연결해줬다. 로저 스톤은 초창기엔 트럼프를 위해 정부를 상대하는 업무를 맡았지만, 나중에는 정치 컨설턴트로 활약하면서 ‘트럼프의 남자’로 불렸다. 2016년 제45대 대통령에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는 뉴욕에서 한창 부동산 사업을 확장하던 때인 1970~80년대 로이 콘과 깊은 관계를 맺었다. 어찌 보면 반세기 동안 악마 변호사로 악명을 떨친 로이 콘과 부동산 투기로 돈을 모은 트럼프의 의기투합은 당연한 일이었다. 트럼프는 아버지로부터 부동산 사업을 물려받았다. 트럼프의 아버지는 독일계 이민자로, 서부 개척시대에 광부들을 상대로 한 식당과 매춘으로 돈을 모았다. 뉴욕에서 부동산으로 업종을 바꿔 아파트 건설사업을 했다. 당연히 뉴욕시 정부와의 관계가 사업을 좌지우지했다. 정부와 은행을 상대로 로비하는 일이 트럼프 일가의 사업이었으며, 그렇게 트럼프는 사업을 배웠다. 트럼프의 아버지는 인종차별주의자였다. 나치를 추종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한때 백인 우월주의 단체인 KKK단에서 활동해 교도소에 드나들기도 했다. 트럼프가 극우 인종주의자들과 정서적으로 잘 교감하는 것도 그에게 그런 DNA가 있음을 짐작게 한다. ▶로이 콘 덕에 재산 지켜 로이 콘과 트럼프와의 관계는 1970년 초반 시작됐다. 트럼프는 로이 콘의 의뢰인이었지만 그 이상의 친분을 맺었다. 트럼프를 닉슨 대통령과 레이건 대통령에게 직접 소개한 사람이 바로 로이 콘이었다. 로이 콘은 자신보다 19살이나 적은 트럼프를 각별하게 챙겼다. 트럼프에 따르면 이런 친밀한 관계로 인해 변호사 수수료를 면제받기도 했다. 트럼프가 두 번의 이혼을 하면서도 재산을 지킬 수 있었던 것도 로이 콘 덕분이다. 트럼프의 첫 부인인 이바나 트럼프에게 ‘이혼할 경우 남편으로부터 받은 모든 재산을 포기한다’라는 혼전 각서에 서명하게 한 이가 바로 로이 콘이다. 트럼프의 사업은 호텔, 카지노, 연예계 등으로 무차별적으로 뻗어나갔다. 그러면서 트럼프는 자신의 제국을 맨해튼에 건설했다. 이 과정에서 민주·공화당을 가리지 않고 유명 정치인과 교류하며 그 관계를 과시했다. 또 불법적인 일도 마다하지 않아 유명세를 높였다. 일례로 1980년대엔 70개 이상의 은행들이 트럼프에게 40억 달러 상당의 대출을 했는데, 트럼프가 돈을 갚지 않고 회사를 파산시키는 바람에 은행들이 큰 손해를 보기도 했다. 지난달 제77회 칸 영화제가 열렸다. 공식 경쟁 부문에 영화 ‘디 어프렌티스(The Apprentices)’가 출품됐다. 1970년대 뉴욕의 비즈니스계를 섭렵하는 젊은 트럼프가 자신의 멘토인 로이 콘을 만나는 스토리가 펼쳐진다. 영화의 각본은 워싱턴과 백악관을 취재한 프리랜서 작가인 가브리엘 셔면이 썼다. 영화에는 트럼프에 대한 신랄하고 거침없는 비판이 등장한다.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특히 트럼프의 불법 행위와 관련된 형사재판이 진행되는 중이어서 큰 관심을 끈다. 영화는 트럼프와 로이 콘의 인연과 두 사람의 삶의 방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트럼프는 자기애가 강하고 여성 편력이 심한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일부 장면들은 다가올 대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 첫 번째 부인인 이바나에게 공격적인 성적 욕구를 드러내 보이는 트럼프의 모습에서 여성 표심이 흔들릴 수도 있다. 2024년 대통령 선거가 5개월을 앞두고 있다. 차기 대통령은 바이든, 아니면 트럼프 둘 중의 한 명이다. 현직인 바이든 대통령은 고령과 허약한 이미지로 지지율이 올라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인해 시민들의 항의가 바이든에게 향하고 있다. 불법과 사기로 형사 기소된 트럼프는 재판 진행 과정에서 증인들로부터 그의 과거(성매매 입막음 돈거래)가 낱낱이 드러나고 있다. 그럼에도 트럼프 재판이 열리는 맨해튼의 법원 근처엔 인종차별주의자들과 전과자들이 모여 트럼프를 응원하고 있다. 트럼프가 스스로를 악마화할수록 경쟁력이 강해지는 이유는 뭘까. 악마 변호사 로이 콘의 가르침 때문일까.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 대표>FOCUS 트럼프 변호사 도널드 트럼프 뉴욕주 변호사 뉴욕 변호사